[웹툰 독후감] 청소하러 왔어요


BGM으로 추천하는 음악
ヨルシカ - 忘れてください
요루시카 - 잊어주세요
(MV는 꼭 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언제부터였을까, 내 집이 지저분해지기 시작했다. 아니, 언제부터인지 사실 알고 있다. 스스로 자포자기하고 '나는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주홍글씨를 스스로 붙였을 때부터다. 시작은 침대 패드부터였다. 침대 패드가 매트리스에서 미끄러지지 못하게 붙여 둔 찍찍이 테이프가 어느덧 떨어져서 발에 들러붙기 시작했지만, 못 느낀 척했다. 그 다음은 세탁이 끝난 빨래. 어차피 개켜서 정리해 넣지 않아도 대충 주워서 입는 데는 문제없다. 그리고는 청소기가 망가져서 바닥 청소를 미루고, 쓰레기봉투도 나갈 날에 버리겠다며 사흘이고 나흘이고 두고, 설거지가 귀찮아서 밥을 먹지 않았다.

무기력하게 누워서 웹툰이나 보고 있었다. 며칠 뒤 유료화된다고 하는 웹툰이 있었다. 볼까 하다 그것마저도 그림체가 마음에 들지 않아 며칠을 미뤘다. 그리고 적당히 하고 싶은 게 없어졌을 때, <청소하러 왔어요>를 읽기 시작했다.

 

주인공 '우연'은 스물일곱. 성년이 되고 7년간 한 회사에서 누구보다 일찍 출근하고 누구보다 늦게 퇴근하며 열정을 다했지만, 고졸이라는 이유로 승진에서 제외된다. 우연에게 일을 묻던 어리숙한 대졸 후임이 그녀보다 먼저 승진한 날, 7년간 제대로 청소하지 못한 쓰레기장 같은 방에서 우연은 일어날 수 없다는 감정을 느낀다.

그렇게 쓰레기장 한구석에서 출근도 뭣도 하지 못하고 누워 있던 우연의 집에 의문의 여성이 들어온다. 수면부족에 시달리고 있던 우연은 그녀를 만류하지도 못하고 잠에 들었지만, 그녀는 '청소하러 왔다, 그대로 자고 있어도 된다'며 청소를 시작했다. 우연이 잠에서 깼을 때 남은 건, 깨끗하게 정리된 집과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여성에 대한 의문 뿐이었다.

깨끗해진 집에서 우연은 오랜만에, 정말 오랜만에, 유통기한이 다 되어가는 라면을 겨우 꺼내 끓여먹기 시작했다. 밀린 설거지가 엄두가 나지 않아 식사를 할 수 없었던 우연이었지만, 깨끗해진 집에서는 뭐든지 할 수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모든 의욕을 불태웠다가 잃어버린 사람에게 한 번의 청소만으로 건강해지라고 할 수는 없다. 다음 주, 똑같은 쓰레기장으로 돌아간 우연의 방에 의문의 여성은 다시 찾아와, 청소를 해준다. 도와줄 것 없냐는 우연의 물음에도 그녀는 "청소는 자신의 일"이라며, 우연이 할 일은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것"이라고 한다.

우연의 하고 싶은 일은 생각보다 단순했다. 회사 앞 카페 한정 메뉴가 런칭한 것을 알게 된 우연은 한정 메뉴가 먹고 싶었다. 그리고 무작정 집을 뛰쳐나와, 카페까지 갔다. 우연이 사회 초년생일 때, 상사에게 깨진 우연이 무작정 들어갔던 카페였다. 특별한 맛의 카페는 아니었지만, 우연이 엄마 용돈이나 공과금처럼 '필요해서 쓴 돈'이 아니라 처음으로 '나를 위해서 쓴 돈', 그 기억을 취미삼아 자주 간 카페.

우연이 카페에 들르자 카페 사장님은 깜짝 놀라서 주문을 받고는, 주문한 한정 메뉴와 함께 선물이라며 우연에게 원두를 선물로 줬다. 한동안 안 보이길래 걱정했다며. 그렇게 선물로 받은 원두를 내려 청소를 해 주던 의문의 여성 - '하라'와 함께 마시며, 우연은 다시 일어날 수 있었다.

그 이후에도 우연에게는 다른 좌절이 찾아오고, 하라가 청소를 시작한 계기에 대해 알게 되기도 한다. 이 이후의 이야기는 직접 읽어보는 편이 좋겠다. 51화의 - 웹툰 치고는 - 짧은 분량의 작품이니.

 

<청소하러 왔어요>는 고립 청년에 대해 이야기한다. 비단 우연 뿐만이 아니라, 나를 포함한 이 사회의 수많은 청년들은 이런 쓰레기장 속에서 살아가고 있으리라. 내 공간을, '나'를 챙기지 못하고 바깥의 나만 보다가, 곪아터진 나 속에 처박혀 고립된 사람들.

하라가 처음 우연의 집을 청소해준 뒤, 유통기간이 아슬아슬한 라면을 끓여먹던 우연은 이렇게 생각한다. '여태 굶은 건 설거지를 할 수 없어서였구나. (중략) 배고픈 줄도 모르고 말라가고 있었구나'. 바깥의 나에게 최선을 다하던 우연은 자신이 어떤 상태가 되고 있는지 - 배고픈 줄도 - 모르고 말라가고 있었다. 그 이유는 정말 명명백백하게도 '설거지를 할 수 없어서' - 즉, 자신을 챙기지 않아서였다.

마음에 여유가 없어지면 자신을 챙길 수 없다. 오롯이 나의 공간인 내 집은 반대로 말하면 오롯이 나만이 챙길 수 있다. 내가 챙길 수 없는 내 집은 당연하게도 아무도 챙기지 않고 내 쓰레기만 생기는 공간이 된다. '인정받지 못하는' 나는 당연히 아무런 여유가 없었다. 떠올리면 괴로운 기억을 잊기 위해서, 혹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으니까, 일어나면 일하다 공부하다 잤다. 하루 몇 시간 정도는 취미생활을 하며 모든 걸 잊기도 했지만, 취미가 끝나면 또다시 갑갑함이 마음을 조여왔다. 새벽 3시, 5시까지 잠을 못 잤고, 자도 5시간을 넘게 자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청소는 '어차피 남에게 보여줄 것도 아닌 것'에 불과했다. 빨래더미가 집안에 늘어져 있고, 방바닥에는 머리카락과 먼지가 밟히고, 쓰레기봉투가 발에 치이고, 방 전등은 둘 중 하나가 나가 집은 절반만 밝았다.

<청소하러 왔어요>를 읽고, 내가 고립된 걸 알았다. 나는 내 이야기를 정신과 의사 이외에는 아무에게도 하지 않았고, 조언을 구할 어른도 없다. 부끄러웠기 때문이겠지. 보통 조언을 구해야 할 대상인 어머니는 애초에 나를 상처준 장본인이시고, 형에게 내 이야기를 늘어놓기에는 나는 형에게 너무 부끄러운 동생이었다. 그래서 나는 모두에게 나를 숨겼다. 그렇게 고립된 나는 <청소하러 왔어요>의 등장인물들과 정말 똑같이 쓰레기장에서 살고 있었다.

물론, 나에게도 하라가 찾아온 적은 있다. 하지만 우연이 처음 하라에게 청소를 받고 일주일 뒤 똑같이 방이 더러워졌듯, 지금의 나도 결국 하고 싶은 것을 찾지 못한 상태다. 그래도 <청소하러 왔어요>를 읽고 나를 좀더 멀리서 지켜볼 수 있게 되고, 나를 좀더 챙겨보기로 결심했다. 아직 나는 내 문제를 이겨내진 못했다. 하지만, 이겨내지 못한 나라도, 불행하기만 한 건 아니다. 웬 알림 소리에 폰을 보면 사랑하는 사람들의 연락을 받을 때도 있다. 그런 행복한 때를 행복하게 챙기고 싶다면, 적어도 나라도 나를 챙겨야지. 내가 나를 사랑하지 못하면 누가 나를 사랑해준단 말이냐.

나는 이 독후감을 쓰면서 이불빨래를 하고, 중고 청소기 구매 약속을 잡고, 빨래를 개고, 침대 패드를 클립으로 고정했다.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몬스터헌터 와일즈] 광룡증을 알아보자 (feat. 흑식일체, 무아지경, 식공복장)

[몬스터헌터 와일즈] 힘의 해방을 알아보자 (feat. 천둥소리)

[몬스터헌터 와일즈] 역습을 알아보자